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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기록

갈 곳을 정하지 않고 그만 두는 개발자 이야기

롯데빙빙바 2024. 3. 3. 22:30

 

지난주에 나는 3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일을 할 때 회사가 원하는 방식과 나의 방식이 달랐고, 그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이 기회에 지금의 나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남겨두려 한다.

 

 

지난 1월, 어떤 노트북을 알리기위한 팝업스토어(전시)에 외주 개발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 전시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이벤트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사람들이 노트북 화면에서 스노우볼을 터치하면 확률에 따라 받을 상품을 보여주는 간단한 프로그램이었다. 약 2~3일간의 시간을 들여 작업을 끝냈다. 구현하기로 한 기능은 완벽히 동작했다.

 

일이 끝났지만 나는 더 잘할 수는 없었는지 고민해보았다.

  • 깔끔하고 읽기 좋은 코드를 작성한다.
  • 유지보수하기 좋은 구조로 설계한다.
  • 로딩 속도를 더욱 빠르게 개선한다

개발자가 더 잘한다고 하면 이런 내용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내용은 조금 다른데, 다시 내가 했던 이벤트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가서 얘기해보겠다. 내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벤트 프로그램의 목적을 파악해야 했다.

 

사람들은 전시에 오자마자 이벤트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프로그램에서 받을 상품을 추첨하고, 티켓을 받는다. 전시의 끝에 SNS에 전시 소식을 공유한 것을 보여주고, 티켓에 맞는 상품을 받아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행동은 공유이다. 사람들이 공유하게 하기 위해 상품을 주는 것이고, 티켓을 주는 것이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한다.

 

정리하면, 이벤트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에게 공유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유는 더 많은 사람이 오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유한 것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올까?

  1. 느낌있어 보이는, 그래서 나도 사진찍어 올리고 싶은 어떤 것을 만든다.
  2. 재미있고 친구들에게 웃으며 공유하고 싶은 어떤 것을 만든다.
  3. 신기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을 만든다.

위 분류는 보통 기획을 할 때 결정하는 내용이다. 들어보니 클라이언트와 기획에서 1번처럼 느낌있고 고급스러운 전시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제안을 해야 목적에 맞는 기여를 할 수 있을까?

  •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하는 부드러운 스크롤링 or 화면 전환 (참고링크: https://theagency-1.webflow.io/)
  • 터치 경험을 살려줄 터치 애니메이션 (노트북에 터치 스크린이 탑재되어있다)
  • 이름을 통해 ai로 생성한 welcome 이미지를 티켓에 탑재해준다. (노트북의 메인 기능이 ai였다)

내가 하려고 한 것은 목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라 생각되는 기능의 제안과 구현이었다. 나의 제안은 기획자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개발쪽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기 쉬운 제안인 것이다. 만약 이 제안이 논의되고 구현까지 이어졌다면, 일의 프로세스는 아래와 같았을 것이다.

 
  1. 프로젝트의 목적과 팀의 상황을 이해한다.
  2.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해서 개발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한다.
  3. 선택지를 제안하고, 논의를 갖는다.
  4. 결정된 선택지를 구현한다.
  5. 1 ~ 4를 반복한다.

지난달에 퇴사를 결정하기 전까지 나는 우리 회사가 하는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위 목록의 1번) 무진장 애썼다.

  • 우리회사의 프로젝트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어떤 문제일까?
  • 그런 문제를 겪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 그런 문제가 해결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 우리는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

다양한 질문을 주고받았지만 결국 잘 되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지도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나는 우리 회사에 1번을 더 해보는 것보다 다른 문제를 찾아나서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혼자서 하는 프로젝트로도 당분간 즐겁게 일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갈 곳을 정하지 않고도 퇴사할 수 있었다. 즐겁게 일하며 내 정체성과 시너지가 나는 팀을 찾아 이직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오해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덧붙이는 말

 

1. 앞서 말했던

  • 깔끔하고 읽기 좋은 코드를 작성한다.
  • 유지보수하기 좋은 구조로 설계한다.
  • 로딩 속도를 더욱 빠르게 개선한다.

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종종 좋은 제안이 될 것이다. 다만, 외주 개발에서는 위 옵션이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고 보진 않은 것 뿐이다.

 

2. 내 뜻대로만 프로젝트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나는 기획자 등 의사결정권자의 결정을 열심히 따를 것이다. 나는 명확한 목적과 방향성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 방향성이 있다면 스스로 그 방향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할 수 있고, 즐겁게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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